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동궁과 월지. 신라시대 왕자들이 살던 별궁이 있던 자리다. 조선시대에는 ‘오리 무리가 있는 연못’이라는 뜻의 안압지로 불렸다. 동궁 내 연회 장소로 활용된 시설인 임해전은 현재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야경 명소가 됐다./경주시 제공
경북 경주시는 이른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가득해 붙은 별명이다.’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말도 있을 만큼 한국 내에서도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가 살아 숨쉰다. 경주는 국내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도시다. 유네스코가 한국에서 등재한 세계유산 총 16건 중 4건(25%)이 경주에 있다. 올 가을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를 통해 내세울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다.
지난 5일 찾은 경북 경주시 진현동의 불국사는 추운 날씨에도 사찰을 찾은 관광객 1000여명으로 붐볐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재상 김대성이 짓기 시작해 혜공왕 10년(774년)에 준공됐다는 이 사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최고의 인기 관광지다. 지난해 불국사를 방문한 관광객은 총 223만 명으로, 경주 내 유적 중 최다였다. 40만 9315㎡(12만 3817평) 규모의 경내에선 대웅전과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 3층 석탑인 석가탑 등을 볼 수 있다. 불국사에서 차로 약 20분을 달리면 토함산에 자리잡은 암자인 석굴암을 볼 수 있다. 석굴 내부로 들어서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3.4m의 거대 불상(佛像)인 석가여래좌상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은은한 미소와 근엄한 표정으로 조각된 이 불상은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불국사와 석굴암에 매년 수백만 명 상당의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불리단길’이라는 상권도 생겼다. 불국사 상가시장과 토함산 아랫마을까지 이어지는 불리단길은 최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카페와 음식점, 공방 등이 들어서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봄철에는 연인들이 데이트 코스로 찾는 ‘겹벚꽃 성지’로도 유명하다.
◇불국사,대릉원…볼거리 넘치는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을 관람한 뒤 서쪽으로 14km를 달리면 경주의 또다른 유적들이 운집한 ‘경주 역사 유적지구 대릉원지구’가 나온다. 대릉원지구는 노동리·노서리·황남리·황오리·인왕리 등 5개 고분군이 모여 있는 곳이다.
대릉원에는 신라 왕족의 무덤인 천마총과 황남대총, 미추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 등이 위치해있다. 천마총 내부에선 천마도와 금관, 금제허리띠 등 각종 유물이 발견돼 신라시대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됐다. 높이 23m, 길이 120m로 경주에서 가장 큰 무덤인 황남대총도 인기다. 황남대총 너머에 위치한 ‘목련 포토존’은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 등에서 이른바 ‘대릉원 인증샷 찍는 곳’으로 유명하다. 주말에는 무덤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관광객들이 일렬로 줄을 서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대릉원에서 남쪽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신라시대의 천문 관측 시설인 첨성대가 나온다. 가을철인 9~11월이 되면 첨성대 바로 옆에 위치한 핑크뮬리 군락지에서 핑크뮬리가 만개한다. 이때 첨성대 주변은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첨성대를 지나 걷다보면 인왕동 고분군과 내물왕릉 등 무덤들과 함께 물푸레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울창한 경주 계림을 볼 수 있다. 과거 신라의 궁궐이 있었던 반월성, 경주 석빙고까지 약 1시간을 들여 첨성대 인근 유적지 한바퀴를 돌고나면 과거 신라시대로 돌아간 느낌마저 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의 대표 사찰인 불국사. 8세기 전후 통일신라 시대 불교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석굴암. 석굴 내에 위치한 석가여래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 3.4m에 달한다.
경주시 황남동 및 노동동 일대의 고분군인 대릉원 전경.
대릉원 인근에 위치한 경주의 관광지 황리단길. 황남동과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쳐서 지은 명칭으로, 한옥 형태의 카페와 식당, 공방 등이 들어서 있다. 작년 한해 280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낮에는 황리단길, 저녁엔 월정교 걸어볼까
대릉원과 맞닿은 관광지 ‘황리단길’도 지난 한해 280만 명이 찾은 인기 관광지다. 황리단길은 황남동과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친 이름으로, 대릉원 입구에서 황남초등학교 네거리까지 이어진 700m의 도로와 대릉원 서편 450m 가량의 돌담길을 일컫는다. 원래 경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인근에 대릉원과 첨성대 등의 사적지가 있고, 1960~70년대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들이 소셜미디어로 퍼지면서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타 경주의 명물거리가 됐다. 주로 한옥 형태의 카페와 음식점들이 많고 금관과 귀걸이 등 신라 전통 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위치해 있다.
저녁에는 ‘동궁과 월지’, ‘월정교’에 관광객들이 야경을 보러 몰려든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시대 왕자들이 머물던 별궁이 있던 자리다. 전각인 임해전과 연못인 월지 수면을 비추는 야간 조명이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2018년에 복원된 월정교 역시 야경 명소로 인기다. 길이 66m의 교량이 양 끝의 문루(門樓) 2개를 연결하는 형태의 월정교는 야간에 월정교 바깥쪽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일품이다.
지난 한해 1355만 3187명의 관광객이 경주를 다녀갔다. 대한민국 인구 4분의 1 이상이 경주를 찾은 셈이다. 경주시 전체 인구(24만 명)의 56배가 넘는 수치다. 관광 매출은 2023년 기준 2614억원에 달한다. 경주시는 향후 APEC 정상회의를 위해 관광지 정비 등에 더욱 공을 들일 계획이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APEC을 맞아 천년고도 경주를 보다 아름답게 정비해 전세계가 한국에 반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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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규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