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구 거주민이 읽은
[조명호 기자]
“봐라, 젊은것들이 아무리 머라 캐도 동대구역에 이리 박정희 대통령 동상 딱 서 있으이 얼매나 보기 존노? 퍼뜩 여 동상 앞에 서봐라. 사진 한 방 찍구로…”
할아버지들은 동상을 돌아보며 연신 웃고 계셨다. 일부러 동대구역 광장에 설치된 박정희 동상을 보러 오신 것처럼 보였다. 마침 지나가는 나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하셨다.
옛날 옛적 필름카메라였다면 일부러 흔들리게 찍거나 동상 일부만 나오게 찍었겠지만, 사진 촬영 후 곧바로 확인가능한 스마트폰은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가 없다. 환하게 웃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과 감격에 겨워하시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한 컷에 담아 곱게 사진을 찍어드렸다.
사실 박정희는 대구사람도 아니다. 경북 구미 태생인 박정희는 대구경북 모든 곳이 고향이다. 박정희 동상은 동대구역광장을 포함해 경북 구미에 있는 박정희 생가터, 구미초등학교, 포항 문성리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입상과 좌상 각 1개, 경북도청 앞 공원, 경산 영남대 캠퍼스 등 곳곳에 세워져 있다.
박정희는 생의 마지막 술자리에서 부하의 총탄에 맞아 비참하게 죽었지만 그는 여전히 금빛 쇳덩이로 환생해서 우뚝 서 있다. 최소한 대구경북에서 그는 승리자가 되어 있다.
▲ 박정희 동상 동대구역광장에 서 있는 박정희 동상. 대구경북에 곳곳에 박정희는 동상으로 환생하여 우뚝 서 있다.ⓒ 오마이뉴스
승리자의 기록만 반복하는 대구”대구는 승리자에 대한 기록만 반복한다.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2월 21일에서 1960년 2월 28일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대구시는 이 기간을 대구시민주간으로 지정하였다. 유명해서 유명한, 승리자의 기록만 추구하는 양지만 걷는 느낌이다. 역사는 입체적이라 그림자도 함께 그려 넣어야 윤곽이 잘 보인다. 밝은 부분만 취하고 어두운 부분을 쉬쉬하는 도시는 모두를 위한 도시가 아니다. 생존자. 강자, 다수의 입장에서만 도시사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행위는 도시기억을 독점하는 행위다. 소수사회의 입장에서는 폭력이 되는 것이다. 상인동가스폭발, 대구지하철참사 등 대구의 어두운 사건들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다.”
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은 서부원, 배지연, 한상훈, 송영우, 우동윤, 이경숙, 권상구 등 7명의 사람이 내가 사는 대구란 도시에 대해 쓴 글이다. 이 책은 특별하다. 자주 가는 동네책방에서 펴 낸 책이다.
책방지기 송영우님은 라는 제목으로 ‘2.18 대구지하철참사’의 아픈 기억이 지워져 가는 안타까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한국토토뉴스시민기자이기도 한 광주사람 서부원님은 대구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대구사람 전태일과 조영래를 통해 고백했다.
지금 대구는 영화 ‘배트맨’의 도시 ‘고담’에 빗대어 보수적이고 강고한 ‘꼴통’의 이미지로 각인되고, 박정희라는 인물이 과잉 대표되면서, 지역이 품은 다른 역사와 인물들이 가려지거나 지워지곤 한다. 하지만 원래 대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걸출한 인물들을 여럿 배출했다. 책에 나오듯이 박정희는 1/n일 뿐이다.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과 김광제, 항일 독립전쟁을 이끈 이상정 장군, 그의 동생 이상화 시인이 있다. 또한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했던 장진홍 의사도 대구사람이며, 시인이라기보다 독립운동가가 어울리는 이육사도 대구와 인연이 깊다.
항쟁의 도시에서 보수의 성지가 되기까지
지금이야 대구가 ‘보수의 성지’인지 ‘꼴통의 본진’인지 잘 모르겠지만, 오래전 대구는 항쟁의 도시, 저항의 도시였다. 1907년 일본의 경제 침략에 맞선 국채보상운동을 시작으로 1946년 미군정의 폭력통치에 맞선 10월 항쟁, 1960년 4·19의 도화선이 된 2·28 학생운동 등 지금으로 치면 대구는 ‘좌파’의 도시였다.
한국전쟁 때 도시의 주요 시설들이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아 지역의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의 활동이 강해서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렀고, 그 중심에 박정희의 형 박상희가 있었다.
하지만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정권을 유지하고,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좌익경력을 지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었던 대구의 좌익세력을 박살내고 반공투사로서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쿠데타 이후 박정희는 대대적인 빨갱이 탄압으로 대구의 사상 토양을 정리한 뒤 이 지역 인사들을 고위직에 대거 등용함으로써 지금까지 이어져 온 영남 패권주의의 싹을 심는다.
‘분명 과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 국민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 준 건 우리 박정희 대통령의 공 아인교.’
‘반공사상’의 지속적 주입과 ‘민족중흥 역사적 사명’의 부추김 속에 대구 사람들은 박정희와 경제발전을 등치 시키고, 기억해야 할 대구의 역사적 인물들을 모두 잊어버린 듯하다.
박정희 시대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전태일의 고향이 대구라는 것을 아는 대구 사람들은 별로 없다. 전태일을 따라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인권변호사 조영래도 대구 사람이다.
대구에는 박정희 동상도 있지만 가수 김광석 동상도 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라는 이름으로 방천시장에 김광석이 있다. 원래 지역의 ‘별난 예술가’들이 김광석을 주제로 벽화를 그려내자 그 벽화가 유명해졌다. 이후 지자체가 후원하고 홍보한 덕에 ‘변두리 재래시장’이라는 예술가들의 도피처는 재래시장에 예술을 끼얹는 연금술로 성공적 관광지라는 그럴싸한 권력의 기념비가 완성되었다.
김광석만으로는 부족했을까?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난 봉준호 감독이
영화 이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하자 대구 남구청에서 ‘봉준호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봉준호는 자신의 이름을 단 길과 생가터
조성사업을 거부했다.
대구는 어쩌다 유명인을 내세워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얄팍한 욕망만이 가득한 도시가 되었을까? 흔히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 친구 중에 검사하는 놈이 있다, 우리 아버지 친구가 대기업 이사를 지내신 분이다, 내 군대 동기의 친구의 친구가 유명한 연예인이네 뭐네 하는 말 말이다.
혹시 대구도 그런 게 아닐까? 자꾸만 쪼그라드는 쇠락한 도시에, 다른 도시의 조롱 섞인 손가락질에, 내세울 것은 대구 출신 성공한 유명인들 밖에 남은 것이 없는.
박정희는 우뚝 선 자신의 동상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들이 불침번 근무를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5살에 대구를 떠난 김광석은 방천시장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구는 어른들의 도시이다. 노인들이라고 하면 그 도시에 사는 내가 너무 무기력해 보일 것 같아 어른들의 도시라고 부른다. 2024년 말 기준 대구시 인구 2,363,629명 중에 60대 이상 인구는 695,405명으로 약 30%를 차지한다.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국평균보다 노인인구 비율이 높다.
보수적이고 예의 바른(?) 도시라서 그런지 지하철에서 어른들이 큰 소리로 전화하고, 안방처럼 떠들어도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자전거도로나 등산로에서 어른들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큰 볼륨으로 트로트 음악이나 극우 유튜브 방송을 틀고 다녀도 당당한 도시가 대구라는 도시이다.
어제 서울에 볼일이 있어 기차를 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동대구역에 갔다. 지하철에서는 어른들이 이재명을 욕하고 윤석열의 계엄을 잘했다고 떠들고 있었으며, 동대구역 앞에 있는 박정희 동상 앞에서는 선글라스를 쓴 어른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구는 어떤 도시인가요?”… 박정희와 전태일 동상이 함께 서는 날 올까
이란 책은 대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는 보수의 심장이라고 하고 또 지금 누구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그 벽을 부수겠다고 하는데. 사실 대구는 그 이상의 도시다. 역사의 질곡마다, 문화의 창출마다, 혁신의 기점마다 대구와 대구사람들이 쌓아 올린 서사는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하지만 답답하다. 가끔 대구에 사는 것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그 옛날 힘차게 저항하고 먼저 나아갔던 역동과 항쟁의 도시의 피는 여전히 흐르고 있을거라는 자그마한 기대를 갖고 살기에는 너무 답답하게 느껴진다.
동대구역광장에 지금 어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박정희 동상과 함께 전태일 열사와 조영래 변호사가 함께 어깨동무하고 있는 동상을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 책표지. 7명의 사람들이 대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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