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3.10.6/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황두현 기자 = 상대방의 재산을 편취했을 때 피해자가 재산을 처분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최근 사기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수거책으로 일하며 2021년 11월경 조직원들과 공모해 피해자들로부터 합계 8160만 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성명불상의 조직원은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각각 다른 피해자에게 “아파트 대출용 공탁금 1500만 원, 대출 변제금 1160만 원을 내야한다”고 속였고, A 씨를 이를 모두 전달받았다.
또 금융사 직원을 사칭한 조직원에게 연락을 받은 또 다른 피해자들은 각각 1500만 원, 4000만 원을 A 씨에게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해 징역 10개월 판결을 했지만, 2심은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가 A 씨의 혐의 중 11월 24일 한 피해자로부터 4000만 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당시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계좌 비밀번호가 유출돼 수사를 위해 지문 채취를 해야 한다. 현금을 찾아서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두면 지문을 감식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피해자는 이에 현금 4000만 원을 비닐봉지에 담아 현관문에 걸어뒀고, A 씨는 조직원의 지시를 받아 이를 챙겼다.
법원은 피해자가 지문 감식을 위해 현금을 걸어뒀고, 현관문을 열면 언제든 확인할 수 있었다며 A 씨의 사기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사기 혐의 요건인 ‘피해자의 처분 행위 또는 처분 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해 재물을 가져가는 것으로 피해자의 처분 의사가 필요하다. 반면 의사에 반해 재물을 가져가는 범죄는 절도죄가 성립한다.
이를테면 보석상에서 목걸이를 보겠다며 주인으로부터 건네받은 뒤 착용하고 도주했다면 피해자의 교부 의사가 없었으므로 사기죄가 아닌 절도죄가 성립한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